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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되기

  • 작성자

    황경규

  • 작성일

    2024.07.09 PM 20:29

  • 조회수

    835

하늘을 달리고 싶다. 물론 바보같은 이야기다. 어떤 선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다리 육백 치는 소리쯤 된다. 숫송아지 새끼 밸 때나 되면 모를까. 어쨋든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럼에도 속된 세상사에 끄달리다 보면, 문득 하늘 위를 내달리고 싶은 생각이 와락 달려든다. 

 

딱히 하늘인 이유는 없다. 땅 위라면 편하겠지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웬지 생기지 않는다. 마음 끌리는 데야 별 도리가 없지 않은가. 비웃으며 바보라 단정지어도 상관없다. 때론 조롱 당한들 어떠랴. 지금 이 세상엔 더한 바보들이 우글대고 있다. 단지 그런 부류에 속하지만 않으면 된다.

 

익히 알다시피 바보는 거짓과 위선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엔 어리석고 한심해도 그저 있는 그대로를 진실되게 보여준다. 절대 감추고 속이려 들지 않는다. 때론 진짜 바보인 듯 오해 할만큼 정직하다. 이 세상의 바보들이 늘 춥고 가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데 이 땅엔 진짜 바보들이 더 많다. 뭔 짓을 해서든지 등 따습고 배부른 짓만 해대는 이들이다. 빗대자면 뒤에서 호박씨만 까대며 이익만 챙기는 이들의 총칭쯤 된다. 그들은 뒤돌아 앉아 희희닥 거리며 세상을 조롱하며 손가락질을 해댄다. 바보라고 말이다. 그러나 정작 우스꽝스러운건 그들 자신이 진짜 바보란걸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연일 각본 없는 대하 드라마를 쓰고 있는 정치권을 보자. 물론 입에 담기도 싫지만, 연말 술 안주로는 최고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너는 많이 먹었고, 나는 덜 먹었다’로 하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된 입장에서 보면 바보중에 상바보들이 따로 없다.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일진대, 허구헌날 비비고 찌찌고 볶는 꼴이란. 어느새 정치가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 되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알고 보면 정치권만 그런 건 아니다. 사람냄새 나는 곳은 어디든 다 그렇다. 자리 탐 많고, 말빨만 뾰족히 세우는 이들도 그 중에 하나로 친다. 처음에는 세상의 규격을 깨는 대담함을 내쳐 보여줄 것처럼 온갖 쓴 소리를 내뱉는다. 그런데 정작 필요할 때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꼬리조차 내보이질 않는다. 사실 따져보면 정치권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 모두가 똑같은 바보들인 것을.

 

잘난 세상에 잘난 사람들만 넘쳐나는 세상이다. 날로 얼굴 가죽도 두꺼워져 웬만한 일에는 낮 붉히는 일조차 보기 힘들다. 그런 세상에서 한 번쯤은 우직한 바보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다. 

아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어쩌면 바보되기가 아닌가 싶다. 

설사 춥고 가난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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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리 찬물 한 바가지

대체 젊다는 것은 무엇이던가. 거짓과 협잡이 난무하는 패악질을 두 눈 치켜 뜨고 맞서 자존을 지켜나가는 일이 아니던가. 더 나아가 기득권에 빌붙는 타락한 시대정신을 비웃고, ‘옳은 것’ 보다는 ‘유리한 것’만 찾아다니는 세상의 부조리를 깨뜨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던가. 주제넘게도 붓 한 자루 꼬나 쥔 시퍼런 청춘이 오래 전, 이 거칠고 거친 세상에 뛰어 들 때는 적어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껏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천년 도시 진주의 속내에 정제돼 있는 진주정신의 살아있음을 말이다. 더불어 노쇠해 가는 육체가 정신의 격무를 견디지 못해 파탄하는 그 날까지 버티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진주에서 살아 갈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정작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어설픈 투사가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과의 일에서 단지 서로 의견이 조금 다를 뿐인데도 결코 상대방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남의 일은 단점을 들춰내고, 무턱대고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그랬다. 그리고 거기에서 새롭게 맛보는 작은 특권과 기득권은 달콤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단지 껍데기일 뿐 이었다는 사실을 알아 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거머쥔 작은 특권과 기득권을 지키려고 날마다 저지르는 불평등과 불공평에 눈을 감는 내 안의 거짓된 모습에도 개혁과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읽던 책을 내려 놓는 순간,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수리에 찬 물 한 바가지가 쏟아졌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언제부턴가 우리는 내 안의 거짓을 찾기 보다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데 더 익숙해져 있기에 더욱 그랬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겉으로는 올곧은 정신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는 자신만의 기득권을 쫓는 타락한 시대정신들이 많으리라. 어쩌면 나 자신도 그 중의 한 명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나와 주변 세계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 원동력이 되는 ‘정신의 탄력’이란 명제는 여전히 유효해야 한다. 그것이 진주정신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혹시라도 한심하고 타락한 시대정신이 천년의 속내를 키워 온 진주정신을 왜곡하고 무참히 짓밟도록 내려 둘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다짐한다. 모래 위엔들 어떠랴. 무엇이든 세워라. 대신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워야 한다. 스치기만 해도 크고 오래 남을 상처가 남을 정도면 더 좋다. 설사 실패해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 찾아와도 괜찮다. 그럴수록 다음 기회는 그만큼 재빠르게 오니까 말이다. 수없이 마음을 다잡고, 미리 예단해 미적거리지도, 꼼지락거리지도 말자. ‘말면 말지’ 하는 마음도 접어 두자. 구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고, 구함이 많을수록 번잡스런 것이 세상 이치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은 단언코 없다.무엇을 세우든, 시작부터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예감한다. 또한 누구도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편안하게 사는 게 어떠냐는 회유도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갖가지 이유가 따라 붙을 수도 있다. 어쩌면 지지부진하다가 슬며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예측하고 시작했으니 괜찮다. 그 정도야 지금껏 수없이 겪어왔던 일이고 견뎌냈던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단 하나만 믿자. 진실은 다래끼 돋은 눈꼽에도 끼어 있고, 미운 며느리 속옷에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엇이든 세워야 한다. 설사 허황된 꿈에 머물지라도, 이상만 가지고 처절한 현실의 벽을 허물려고 한 맹자의 우활(迂闊)함이라 비판받아도 좋다. 대신 절대 겁내지 말아야 한다. 상처가 남으면 어떠랴. 또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면 어떠랴. 지금 뭔가를 세운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붓 한 자루 꼬나 든 시퍼런 청춘이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세상에 뛰어든다. 딱 봐도 무모하다. 우활하다. 가시밭길이다. 근데 난 괜찮다. 함께 가는 길동무가 있기에 그렇다. 세울 것이다.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그 무엇인가를.

  • 2024-07-09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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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 가수이자 개그맨인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을 잘 아실 것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망언을 한 칼에 보내 버린데 이어 지금까지 국민 애창곡이 된 이 곡은 독도를 소재로 한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이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이 노래 모르면 간첩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 방송금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 문화공보부로부터 잠정 방송금지 처분을 받은 것이다. 이유를 보면 어이가 없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파동이 일어났을 때 전두환 정부의 대일외교 정책 등을 우려해 금지했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친일파나 왜놈 눈치 보는 인간’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바퀴벌레보다 더 끈질긴 놈들이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첫 선을 보인 1982년 이후,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길 때 마다 이 노래는 전파를 타고 대한민국에 울려 퍼졌다. 2005년에는 독도 노래비가 도동항 광장에 설치되고, 가수 정광태는 본적을 독도로 옮김과 동시에 ‘명예 독도 주민’이 되었다. 반면, 일본은 정광태를 입국금지 명단에 올렸다. 구질구질 한 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나한테 해 준게 뭐 있냐.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멘트로 전 국민을 웃음의 도가니에 빠트린 개그 코너가 있었다. 제목은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다. 남성 취객과 여성 취객이 경찰에게 푸념을 늘어 놓은 콘셉트이다. 술에 취해서 헛소리를 해대는 점이 웃음 포인트지만, 현실을 강하게 풍자한다. 특히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 같은 명대사는 당시 엄청난 유행어로 등극했다. 코너를 보자. 파출소에 온 남성 취객이 순경에게 ‘독도는 우리 땅’을 아느냐고 묻는다. 순경이 노래 1절을 자랑스럽게 부르자,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럼 5절을 불러봐” 순경이 당황해하자, 곧바로 이런 멘트를 던진다. ‘이 애국심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더러운 나까무라 순사야!’ 비록 개그 코너지만 1절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뜨끔하게 만드는 말이다. 당시 장동건과 고소영의 열애 소식이 연예가를 달구었을 때 남성 취객 역의 박성광은 이렇게 말한다. ‘1등 끼리 사귀는 더러운 세상.’ 그리고 유해진과 김혜수의 열애설이 나왔을 때는 ‘나 같은 사람도 연예할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라고 외쳤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그렇게 가끔은 힘이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되는 외침이었다. 남자 취객이 순경에게 묻는다. ‘한우 좋아해?’ 당연하다는 순경의 대답에 ‘5등급은 먹어 봤어’라고 되묻는다. ‘5등급이 있냐?’라는 반문에 순경의 멱살을 부여 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한우 1등급만 기억하는 더러운 육식 순경.” 단순한 개그지만, 여러 상황을 접목시켜 보면 남성 취객의 말은 ‘언제나 옳다’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갖게 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것이 ‘나술세’ 즉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 가진 힘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란걸 직감한다. 그렇다고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순경의 멱살을 부여 잡고서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다가는 곧바로 유치장 신세를 면치 못한다. 막걸리와 소주 한 잔의 힘을 빌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향해 외쳐볼 뿐이다. 그마저도 할 수 없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독도의 날’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10월 25일이다. 독도의 날은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알리고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정을 기념하는 날이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이 공표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는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곧바로 이런 멘트를 떠올리신다면 그대는 개그천재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만 알고 독도의 날은 모르는 더러운 세상.’ 독도의 날은 10월 25일이다. 기억하자.

  • 2024-07-09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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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은 금칠을 한 감옥이다

백악관은 금칠을 한 감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명사(名士)의 자녀치고 문제가 없는 자식들은 드물었다. 총으로 자살을 기도한 스탈린의 장남은 “총 하나도 제대로 쏘지 못하는 주제에…”라는 스탈린의 책망을 들어야 했다. 장남도 장남이지만 차남은 알코올 중독이요, 외동딸 내외는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했다.인도의 국부(國父) 간디의 장남은 아버지의 금욕생활과는 달리 아버지의 명성을 팔아 돈을 챙기고 이권을 넘나들다 결국 막대한 부채를 얻었고, 이를 이기지 못해 결국 결핵으로 변사했다. 그리고 처칠 수상의 자녀 셋도 자살하거나 알코올 중독으로 유치장 나들이를 일삼았다.그런데 꼭 그렇지 않은 명사의 자녀들도 있었다.링컨 대통령의 아들 로버트는 변호사, 장관, 외교관을 역임하며 명망을 유지했지만, 주위의 강력한 출마권고에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금칠을 한 감옥’이라는게 그 이유다. 그런 그는 링컨의 후광을 피해 가며 여생을 존경받으며 살았다.서양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저분하게 누구 누구 아들이 그렇다고 일일이 적지 않아도 온 국민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독자들의 읽는 수고를 덜어주는 차원에서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는게 좋을 것 같다. 누워 침 뱉기에 다름 아니니 그냥 건너 뛰는게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이다.이러한 것을 볼 때 동서양을 막론하고 ‘후광은 액물’이라는 역사의 궤적을 좀체 못 벗어남을 절감케 한다. 큰 나무 아래에서 작은 나무가 자라는 것이 어려운 일이고, 후광을 입는 순간 자신에게 쌓일 마음의 짐을 벗기에는 그 후광이 너무도 무겁기 때문일까? 결국은 예나 지금이나 허세의 공작 날개를 접고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 가는 것이 잘 먹고 잘 사는 길에 다다르는 첩경인 셈이다.옛날은 옛날이고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을거라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으리라.물론 천만의 말씀이다.대(代)를 이어 이라크와 악연(惡緣)을 맺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을 보면 그렇다. 세계평화를 위한 일이라 공언했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反戰)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영화시장을 제패하고 있는 미국의 헐리우드에 사는 영화배우들도 그렇고, 프랑스에서도 연일 반전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인간방패를 자처하면서 까지 이라크 주변국까지 날아갔지만 지금도 전쟁은 목하 진행중이다.물론 전쟁이라는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으며 과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고 있는 중이니 ‘잘한다 못한다’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어느 유명 작가의 글을 보면 미국은 뉴프론티어나 뉴딜이니 하는 모험이 수반되는 니오니즘의 욕구를 응집하고 수렴하는 인물을 선호하는 나라라고 하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런데 정은 옛정이요, 구관이 명관인 우리 사회에서 과연 이라크 전쟁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비단 이라크 전쟁 뿐이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쟁의 명분이 아무리 정당하다 할지라도 피해를 보는 것은 정작 국민들이다. 나라가 피폐해지고, 가정이 파탄나고, 가족을 잃고, 마침내 미래마저도 불투명해진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서부의 명화 ‘백주의 결투’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보안관 게리 쿠퍼가 출옥한 악당 4명을 기다렸다가 백주에 처치하는 간단한 줄거리지만, 영화는 팽팽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관객을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청초한 미모의 신부 그레이스 켈리와 주제가인 ‘하이눈’이 없었다면 관객들은 숨이 막혀 끝까지 보지 못하고 영화관을 뛰쳐 나왔을 지도 모르는 영화이다.‘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결투’가 진행중이다. 어쩌면 결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두들겨 패기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관객들은 이를 숨막혀 하지 않는다. 이미 나중에 밝혀질 스토리가 백일하에 다 드러나서 그런건 아닐까? 후광은 액물이다. 역사가 증명한다.

  • 2024-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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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장난 치세요?

지금 장난 치세요? 악조건 속에서도 굳세게 잘 자라는 식물이 있다. 근데, 하루는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두었다가, 열흘 동안은 서릿발 같은 냉골에 둔다면 자라날 길이 없다. 안 죽으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쩌다 한 번 날아든 희소식에 잠시 동안 희희낙락할 때가 있다. 근데 열흘 내내 치욕적인 흑역사만 써내려 가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게 된다. 우울증에 걸려 세상과 등지지 않으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근데 요상하게도 요즘 세상이 그렇다. 옛날과 달리 ‘살면서 어쩌다가 한 번 나쁜 일이 생기는 세상’이 아니라, ‘어쩌다가 한 번 좋은 일이 생기는 세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는 넋두리가 점점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孟子)는 ‘일일폭지(日日暴之) 십일한지(十日寒之)’라는 글귀로 당시 정치상황을 풍자했다. ‘내가 왕을 뵙는 때가 적으니 이것은 하룻 동안 햇볕을 쪼이는 것과 같고, 내가 물러 나오면 아첨하는 자들이 잡되게 나와 뵙는 날이 많으니 이것은 열흘 동안 차갑게 하는 것이다. 왕에게 선한 양심의 싹이 있다고 한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我見王之時少 猶一日暴之也 我退則諂諛雜進之日多 是十日暴之也 雖有萌蘖之生 我亦安能如之何哉) 하루 잠깐은 햇볕이 들었다 한들, 열흘 동안 계속 간신들의 차갑고 축축한 그림자가 정치의 하늘을 뒤덮고 있다면, 국민들이 어찌 행복한 삶을 꿈꾸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렇잖아도 힘든 삶과 힘겨루기를 하는 판에 정치마저 희망보다는 절망의 그림자가 더욱 짙으니 더욱 그러하다. 정치 이야기야 며칠 밤을 세우면서도 할 자신이 있다. 다만 건강을 생각해서 자제할 뿐이다. 무려 2,000년 전 맹자의 말씀을 지금 되새겨 보면, 참 세상 안 변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서민들의 삶이 지금이나 그때나 얼마나 달라졌는지 돌아보자. 과연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그런데 현실 정치는 여전히 간신들이 득세하고 있고,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퍽퍽하다. 그래서 어떤 정치인은 선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오래전 이야기이다.당시 선거판에서 엄청난 유행이 되었다. 동네 꼬마 녀석들도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라고 조롱을 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그 살림살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다시 한번 자문자답해 본다. ‘그래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고사성어(故事成語)인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생각해 본다. 온갖 거짓말들이 진실의 탈을 쓴 채, 세상을 횡행(橫行)했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담뱃값 인상은 세금 때문이 아니라 국민건강을 위해서다’ ‘56조 부채는 남겼지만, 자원외교 실패는 아니다’ ‘정치개입은 맞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 등등이다. 요즘 세상이라고 크게 달라진건 없다. 여전히 ‘거짓말 천국’을 양산해 내고 있다.지금 국민들은 헷갈린다. 무엇이 사슴(鹿)이고, 무엇이 말(馬)인지 말이다. 그런데 이 애매모호한 문제는 이 사람에게 물어보면 명쾌하게 해결된다. 바로 대한민국의 도덕(道德) 교과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초등학생이다. 아마 물어보면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금 장난치세요?’ 이렇게 아이들도 정확하게 아는 세상을 어른들만 모른척, 부하뇌동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의 시간들이 썩은 미소를 날리며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다.

  • 2024-07-09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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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뭐라카데, 나는 안되는기라

내 뭐라카데, 나는 안되는기라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일본인 양조장 머슴으로 일하던 떠꺼머리 총각이 해방이 되면서 주인이 일본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양조장을 물려 받게 됐다. 갑자기 머슴에서 주인으로 격상된 이 총각, 그날 이후부터 어느새 지역의 유지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는 거들먹거리고 다녔는데, 어느날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지역유지랍시고 동네 하나뿐인 학교 졸업식에 축사를 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막걸리는 동네사람 취할 만큼 줄 수 있는데, 그것 만은 안된다며 극구 사양했지만, ‘지역의 어른이 한 말씀 하라’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는 건 막걸리 만들고 술 찌꺼기 팔아먹는 재주밖에 없는지라. 그렇다고 지역유지 체면에 원고 써달라는 얘기는 차마 못하겠고.달랑 하나 있는 자식 놈은 유지 아들 행세하느라 주색잡기는 천하제일이라 자부하건만 자신보다 더 까막눈이더라나. 날은 점점 다가오고, 뽀죡한 방법은 생각안나니 죽을 맛인데.하루 이틀 시간은 가고 드디어, 졸업식 날 아침. 이 양반 차림새 보소. 말쑥한 양복을 한 벌 걸친 것까지는 좋았는데, 긴장 푼답시고 아침부터 막걸리 두어 사발 들이키고는 털레털레 식장에 턱 들어서니.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들었는지, 그리고 왜 자기만 바라보고 있는지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앞이 캄캄했다나.오랜만에 매 본 넥타이를 고쳐잡고, 연단위에 올라선 이 양반 하는 말.“봄 햇살은 땡땡 내려 쬐도 막걸리는 안 팔리지요”부터 시작해서 횡설수설하더니 급기야는 “김일성 만세, 이승만 죽일 놈”에 까지 갔더라나. 졸업식에 참석해 느긋한 눈으로 축사를 듣고 있던 순사 나리, 눈이 휘둥그레 지더니, 당장 수갑부터 덜컥 채워 끌고 가는데...순경에게 끌려가던 이 양반 하는 말. “내 뭐라카데, 나는 안되는기라”한때 ‘5도 10적’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부를 쌓고 다시 이를 이용해 권력을 사고, 또 성실히 살아가는 이들을 자신의 휘하에 둘려는 자들을 이름이다. 굳이 찾는다면 지금도 5도 10적에 해당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거이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 곁에는 자신만의 성을 굳건히 쌓고 그 휘하에 모든 이를 두려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세상살이가 너무 척박해 그런가. 아니면 사람이 원래 척박한건지. 그러다가 마지막에 꼭 이렇게 말한다. “내 뭐라카데, 나는 안되는기라”

  • 2024-07-09
  • 작성자

    황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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