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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통영은 대박, 진주는 쪽박

통영시는 ‘대박’, 진주시는 ‘쪽박’ 통영과 진주, 두 도시 모두 남부내륙철도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런데 같은 철도를 앞에 두고 두 도시의 행정이 보여준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통영은 기회를 보자 뛰었다. 반대로 진주는 기회를 보고도 멈췄다. 그리고 지금 그 차이가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진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행정,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통영은 대박이고 진주는 쪽박인 이유는 선명하다. 먼저 2022년의 일이다. 국토교통부가 거점육성형 투자선도지구를 공모했다. 통영은 KTX 통영역세권 개발계획을 만들어 뛰어들었고 결국 선정되면서 이른바 대박을 쳤다. 그런데 진주시는 검토만 하다가 접었다. 진주시의회 오경훈 의원이 2023년 6월 8일 진주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진주시 도시계획과장에게 이 문제를 직접 물었다. “진주시가 국토교통부 투자선도지구와 관련해 공문발송을 준비했다가 철회한 것 아니냐”는 취지였다. 당시 진주시 담당 과장의 답변은 그야말로 해괴망측할 정도이다. “준비하다가 우리 시 취지하고는 조금 안 맞다. 그래서 다시 검토했다”고 답변한 것이다. 이 사업은 어쩌면 진주의 미래를 바꿀만한 사안이었다. 사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따내야할 국책사업인데도 진주시는 끝내 추진하지 않았다.그 이유가 ‘진주시 취지하고는 맞지 않다’는 행정의 판단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진주시 행정의 이러한 태도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진주시의 답변을 해석해 보면 ‘몰라서 못한 것도 아니고, 준비를 못한 것도 아니다.’알고 있었고 준비까지 하다가 갑자기 멈춘 것이다. 반면 통영은 어떻게 움직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진주시와 완전히 달랐다. 목숨을 걸고 뛰었다.통영시는 남부내륙철도를 단순히 KTX역 하나 들어오는 사업으로 보지 않았다.“이 철도를 이용해서 도시의 미래를 한번 바꿔보자.”이렇게 접근한 것이다. 국토교통부를 설득하고 경남도와 협력하고 LH와 국가철도공단까지 사업시행자로 끌어들였다.그 결과 약 30만㎡ 규모의 KTX 통영역세권과 배후도시 개발계획이 투자선도지구로 선정됐다. 통영시가 대박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계획 기준 사업 규모가 6,565억원이다. 여기다 정부 맞춤형 컨설팅과 국비지원, 세제·부담금 감면, 건폐율·용적률 완화, 인허가 특례 등 73종의 지원과 특례를 활용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통영시 측 분석으로는 생산유발효과 약 1조994억 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4,843억 원, 고용유발효과 7,401명도 예상됐다.물론 이것은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됐을 때의 예상치라고 보여진다.하지만 적어도 통영은 진주처럼 온갖 구실을 대면서 다가올 미래를 앉아서 기다리지 않았다.미래를 자기 손으로 끌어오기 위해 움직였다. 정말 단순하게 비교해 보면 통영과 진주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통영은 움직였고,진주는 검토만 했다. 통영은 정부를 찾아갔고,진주는 또 검토했다. 통영은 LH와 국가철도공단을 사업에 참여시켰고진주는 취지에 맞지 않다는 결론만 내렸다. 통영은 결국 국가사업을 가져왔고진주는 준비하다 멈췄다. 이게 두 도시의 뼈아픈 차이이다. 진주시의 이러한 행정은 청년 입장에서는 꽤나 큰 문제로 다가온다.청년들에게 도시의 미래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앞으로 이 도시에서 먹고살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에 그렇다.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정부정책을 남보다 빨리 읽는 것.경남도를 설득하는 것.중앙정부를 찾아가는 것.필요하면 정치권까지 움직이는 것.그게 행정의 실력이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진주시의 점수는 0점을 줘도 아깝지 않다. 청년들은 이렇게 되묻는다. “진주의 미래가 걸린 일일수도 있는데 당시에 도대체 무엇이 진주와 안 맞았습니까?” 아마 진주시는 청년들의 물음에 꿀먹은 벙어리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것이다. 더 답답한 것은 이게 과거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6년 9월. 정부가 이번에는 지방공항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관광성장지도를 그렸다.여기서도 두 도시의 차이가 보인다. 지난 2022년 투자선도지구 선정 당시 보다 오히려 이 부분이 더 뼈아프다.정부가 지방공항 중심 5대 관광권을 만들었다.김해공항 관광권은 부산-경주-울산-거제·통영을 중심으로 지방관광의 축을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통영은 포함이 되었는데진주는 또 없다. 정부의 발표를 보면 이제는 아예 화가 난다.정부는 2027년 예산안 기준 국비 659억 원, 지방비 276억 원 등 935억 원을 투입해 입국에서 이동·체류·체험까지 연결하는 지역관광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경남도의 설명을 보면 더 화가 난다.거제·통영을 먼저 중심축으로 만들고, 앞으로 진주·사천·남해·하동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보면 통영은 지금 핵심에 들어갔고, 진주는 앞으로 연결할 지역에 불과한 것이다.언제 확대될지 알수도 없다. 어쩌면 도시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대규모 사업이지만진주는 그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종합적으로 보면 이런 비교가 가능하다. 2022년에는 철도였다.통영은 국가정책에 올라탔고진주는 준비하다 멈췄다. 2026년에는 공항관광이다.통영은 또 국가정책의 핵심에 들어갔고진주는 또 핵심 동선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이쯤되면 진주시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진주시의 국가정책 대응 시스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겁니까?국가가 새로운 성장판을 만들 때 누가 정보를 수집합니까?누가 선제적으로 사업을 만듭니까?누가 경남도를 설득합니까?누가 중앙부처 문을 두드립니까?누가 정치권을 움직입니까?그리고 실패했을 때 누가 책임집니까? 진주시는 이러한 질문에 명백하게 답해야 한다. 기대가 1도 없지만 질문조차 하지 않으면 화를 풀일이 없다. 2022년 철도에서도 통영. 2026년 공항관광에서도 통영.국가가 새로운 성장판을 만들 때 통영은 계속 자기 도시의 이름을 집어넣고 있다. 반면 진주는 어떠한가?2022년에는 준비하다 멈췄고,2026년에는 정부가 새로 그린 핵심 관광동선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물론 지방공항 관광권은 광역지방정부의 제안과 정부의 평가를 거쳐 선정됐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 “진주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하지만 결과는 분명하다..국가가 새로운 관광성장지도를 그렸는데 그 핵심에 진주가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그래서 시민 입장에서는 진주시의 국가정책 대응력을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단순히 관광사업 하나, 철도사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행정의 태도 차이에서 빚어진 결과물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지금 통영은 남부내륙철도를 도시의 성장판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역세권과 배후도시를 함께 개발하고, 국가의 각종 지원과 특례를 활용하고,이번에는 김해공항 관광권의 핵심거점으로까지 연결되고 있다.철도를 잡고, 관광을 연결하고, 하나의 기회를 다음 기회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진주는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질문해야 한다. 국가가 판을 새로 짤 때마다 뒤늦게 따라가는 도시,결정적인 순간에는 이름이 보이지 않는 도시계획과 용역은 많은데 정작 큰 기회를 가져오는 힘은 보이지 않는 도시가 되고 있다.이것이 진주시민이 걱정하는 진주의 모습입니다. 도시가 뒤처지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결정적인 기회를 하나씩 놓치면서 시작된다. 한 번 놓치고,“다음에 잘하겠습니다.”또 놓치고,“장기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그렇게 5년, 10년 지나고 나면 다른 도시는 저만큼 앞서가 있다.그때 가서“진주시 행정이 왜 그렇게 늑장대응을 했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다면진주시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진주시에 마지막 질문을 던져야 한다. “투자선도지구 서정 당시에 진주시는 왜 멈췄습니까?” 투자선도지구가 진주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면 그 판단의 근거를 시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행동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판단했는지,어떤 자료로 판단했는지,대안은 무엇이었는지,그리고 그 선택으로 진주가 무엇을 얻었는지.그것을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설명하지 못한다면,그건 정말 진주시 행정의 뼈아픈 정책 판단이 되는 것이다. 조금 세게 질책한다면‘결과만 놓고보면 진주시 행정은 무능함의 극치이다’라고 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두 사례를 놓고 보면 진주시의 국가정책 대응능력을 심각하게 점검해야 한다고 본다.왜냐하면 지방정부의 실력은 행사 몇 개 더 개최하는 데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국가가 큰 판을 짤 때,우리 도시를 그 판에 집어넣는 능력. 그게 실력이다. 통영은 철도가 들어오자 역세권 개발이라는 국가사업으로 연결했다.그리고 몇 년 뒤에는 지방공항 관광권의 핵심 연계도시에도 이름을 올렸다.하나의 기회를 다음 기회로 연결하고 있다. 근데 진주는 바로 이런 집요함이 보이지 않는다. 진주시는 지금도 시간을 할애해서 진주의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정작 미래를 바꿀 결정적인 순간에는 멈췄다. 근데 시민들이 정말로 원하는 행정은“검토했습니다.”가 아니다. “가져왔습니다.”이다. “노력하겠습니다”가 아니라 “해냈습니다”이다. 부강한 진주, 행복한 시민을 외치는 진주시 행정은 철회되어야 한다는시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시민들이 진주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유는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다.기회가 오는데도 그 기회를 진주의 미래로 바꾸는 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2022년의 진주시의 선택이 정말 옳았다면 지금이라도 설명해야 한다.왜 멈췄는지 공개해야 한다.그리고 2026년 국가 관광성장지도에 왜 진주가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했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한 번이면 실수일 수 있다.두 번이면 이제 시스템을 의심해야 한다.그리고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그때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진주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행정 실패로 기록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제 진주시는“검토하겠습니다.”“추진하겠습니다.”“노력하겠습니다.”이런 말은 그만해야 한다. 진주시가 국가정책을 읽고,먼저 움직이고,정부를 설득하고,결국 사업을 가져올 수 있는 행정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5년 뒤, 10년 뒤 우리는 또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통영은 저만큼 갔는데, 진주는 그때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통영과 진주의 뼈아픈 차이는 어쩌면 도시의 차이가 아니라행정의 절박함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기회가 왔을 때 뛰는 도시와, 기회가 왔는데 검토하다 멈추는 도시.그 차이가 쌓이면 결국 도시의 미래가 달라진다. 진주시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늘의 비판이 아니다. 5년 뒤나 10년 뒤 진주시민들이 “그때 그 기회를 왜 놓쳤나”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진주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것은외부의 조건이 아니라기회를 기회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무능한 행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마지막으로 진주시의회와 경남도의회 역시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를 가지고이 문제에 대한 잘잘못을 명백히 가려내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과거의 잘못에 대한 침묵은 잘못된 행위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자 공범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2026-09-24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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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진주는 침묵의 도시인가

살아있는 자의 목소리를 들려줘 MC스나이퍼의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노래에는 대한민국의 노동현장과 전태일의 기억이 담겨 있다. 음악을 통해 과거의 희생을 기억하는 노래에서 더 진화해 오늘날의 처참한 현실을 되돌아보고 있는지 깨우치게 만든다. 그러면서 이렇게 강렬하게 외친다. ‘살아 있는 자의 목소리를 들려줘’ 살아 있는 자의 목소리는 무엇인가. 가사에 등장하는 ‘묵묵히 지켜 보는 벙어리’가 아니라 현실을 증언하는 목소리이다. 그래서 살아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는 것이고, 증언할 책임 또한 있다는 것이다. 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어떠한가. 말하고 비판할 자유가 있고 시민의 권리도 법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살아 있는 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MC스나이퍼는 전태일의 행동이 ‘늙은 지식인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핵심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실천의 무게’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늙은 지식인’은 누구일까? 단순히 나이 많은 학자로 직설적인 해석을 할 필요는 없다. 이 늙은 지식인은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지만, 정작 현실을 바꾸는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지식인’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MC 스나이퍼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라는 노래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포학의 시대에 맞서 싸운 이들의 삶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들이 남긴 자유와 저항정신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의 문제를 사회에 던진 것이다. 전태일이 몸으로 저항했다면, MC스나이퍼는 음악으로 저항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마지막 정점은 ‘이제는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판단할 차례’라고 말한다. 권력이 말한다고 움추려 들지 말고, 언론이 말한다고 믿지 말고 ‘네 눈으로 보고, 네 머리로 판단하고, 네 입으로 말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MC스나이퍼가 전태일에게서 이어받은 정신일 것이다. 주체·호의·평등의 진주정신을 가진 진주는 어떨까? 진주에는 말하고 싶어도 침묵하는 사람이 참 많다. 왜 말을 못할까? 괜히 말하면 누군가에게 찍힐까 봐 걱정하기 때문이다.행정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행정이 적이 된다는 믿는 사람이 많다. 정치인을 비판하면 정치적 반대자가 된다고 믿는다. 문화예술인이 지원정책을 비판하면 보조금과 지원사업에 불이익을 받는다고 믿는다. 언론이 권력을 비판하면 관계가 틀어져 예산지원이 줄거나 끊긴다고 믿는다. 그래서 침묵한다. 결국 진주에는 할 말은 많은데, 말하는 사람은 없는, 진귀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지역사회에서 그 누구도 ‘이건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라는 불편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것이다. 이렇게 진주가 침묵을 하게 되면 권력은 시민이 만족하는 줄 알고, 행정은 문제가 없는 줄 알고, 정치인은 시민들이 지지하는 줄 안다. 그런데 ‘어떤 잘못된 행위에 대한 침묵은, 잘못에 대한 암묵적 동의이자 공범이 된다’ 사실은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침묵은 두려움을 해소하는 묘약이 되고, 침묵은 생존의 필살기가 되며, 침묵은 포기가 주는 편안함을 알게 만든다. 그리고 그 침묵은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진주라는 도시는 병이 들게 된다. 진주는 주체 호의 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진주정신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왔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천년역사의 정수가 담긴 진주정신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진주정신의 핵심인 주체정신은 권력에 잘 보이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호의정신은 강한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것이다.평등정신은 모두가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말할 자유는 있는데, 말할 용기가 부족한 곳이 진주이다.’라는 반성을 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남명 조식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전태일은 노동현장에서 죽음으로 항거를 했다.MC스나이퍼는 예술인으로 말할 권리를 외쳤다. 그러나 진주는 침묵하고 있다. 진주에 살아있는 자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이다.

  • 2026-09-02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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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진주 경제의 이상한 역설

진주 경제의 이상한 역설 진주시가 코리아 크레딧 뷰(KCB) 자료를 인용해 진주시의 연간 평균소득이 3,818만 원이라고 발표했다. 월 평균으로 따지면 318만원 수준이며,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3위에 해당된다. 경남 평균인 3,611만 원보다 높고, 전국 평균인 3,759만 원보다도 높다. 거기에 경남도 사회조사 결과 소득 만족도까지 경남 시 지역 1위라고 한다. 통계 수치로만 보면 진주는 엄청나게 잘 사는 도시임에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통계기관의 수치를 인용하는 것은 ‘홍보용’ 성격이 강하다. 공인된 통계기관에서 발표된 바 있는 시민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통계를 ‘최대한 은폐’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주시가 인용한 통계기관의 성격과 특성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주시가 인용한 자료는 코리아 크레딧 뷰(KCB)의 자료이다. KCB 자료는 개인신용과 금융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축되는 추정 소득 통계이다. 따라서 국세청의 근로소득, 종합소득 신고액이나 가구소득 통계와는 산출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진주시민의 연간 평균 소득’이라는 표현은 부정확하고, ‘KCB 기준 추정 연간 평균소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 통계수치를 보는 시민들은 일반적으로 진주시민 1명이 연간 벌어들이는 소득이 3,818만원이고, 월평균 318만원인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더불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내 소득은 그 정도가 아닌데?”‘내 소득은 그 정도가 아닌데?’‘우리 집은 월 318만원도 못버는데?’‘진짜 진주시민 평균소득이 저렇게 높다고?’ 여기서 바로 평균의 함정이 발생한다. 평균의 함정이란 ‘평균값 하나가 데이터의 전체적인 분포나 치명적인 예외상황을 감춰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들면 평균 수심이 1m인 강을 건너던 키170cm인 사람이 익사했다. 강의 시작점은 20cm로 아주 얕고, 중간은 3m로 매우 깊다면 평균 수심은 1m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평균 수심이 1m니까 내 키보다 낮아서 안전하겠지”라고 생각하고 뛰어들면 죽음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평균이 ‘극단적인 위험인 최대 수심3m’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평균이라는 놈은 참 재미있다. 어떤 집의 가장은 연봉 2천만 원이고, 어떤 집의 가장은 2억 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이 두 집안의 가장의 수익을 평균 내놓고 “평균 수익이 1억 1천만 원이다.”라고 한다면 연봉 2천만 원 받는 사람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문하게 된다. “내가 1억 1천만 원을 언제 벌었지?”이처럼 평균은 전체 규모를 보는 데는 유용하지만 전형적인 시민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평균 소득이 높다고 해서 시민의 생활이 평균치 만큼 좋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진주시가 진심으로 진주시민의 경제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전체 진주시민들의 연평균 소득을 정확하게 가리키는 통계수치를 인용했어야 했다. 평균 하나만 발표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 다음과 같은 지표도 함께 발표했어야 한다는 뜻이다.중도층 시민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중위소득과 시민들과의 소득격차를 확인할 수 있는 소득 5분위별 분포, 연령별 소득, 근로자 평균 임금, 가구소득 등의 지표가 제시되었어야 했다. KCB라는 특정 통계기관이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진주시민의 연평균 소득이 3,818만원이다.’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34만 진주시민의 연 평균 소득이 3,818만원’인 것도 아니다. 평균의 함정을 이용한 전형적인 홍보 마케팅 이상으로 봐주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남도 사회도 조사에서 진주시가 소득 만족도 경남 3위라는 순위만으로 진주시민이 경제적으로 잘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려서도 안된다. 이 수치가 인용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KCB 자료 진주시민 연평균 소득 3위와 경남지역 소득 만족도 1위라는 진주시의 발표는 언뜻 보면 매우 좋은 그림을 만든다. ‘평균소득도 경남 상위권, 소득 만족도도 경남 시 지역 1위’라는 자료만으로 ‘진주시는 소득도 높고, 소득 만족도 최상위권인 살기좋은 진주’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생긴다. 바로 이 두 통계의 지표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KCB 연간 평균 소득은 금융과 신용데이터를 활용한 추정 경제소득지표이고, 경남도 사회조사 소득만족도 조사는 시민에게 물어본 주관적 만족도이다. 즉 KCB는 ‘돈을 얼마나 번다고 추정’한 것이고, 경남도 사회만족도 조사는 ‘시민이 자기 소득에 얼마나 만족한다고 답했느냐’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자료를 섞어 놓고서는 ‘진주시는 소득도 높고 시민도 만족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소득 만족도는 단순히 소득액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소득만족도는 절대소득이 아니라 생활비 주거비 부채 등을 함께 반영하는 주관적 지표이기 때문이다. 진주시 연평균소득이 3,818만원에 소득 만족도 경남 3위라는 발표만 놓고 보면 이렇게 생각이 들것이다. “우리 진주, 생각보다 괜찮은 동네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시민은 돈을 잘 버는데, 진주라는 도시는 왜 돈을 잘 못 벌까?’ 시민이 돈을 잘 벌면 도시도 돈을 잘 벌 것 같은데, 진주는 조금 묘하다. 이른바 연평균 소득이 3,818만원으로 시민 지갑 수준은 경남 3위인데, 도시의 생산성은 못미치는 것이다. 여기서 GRDP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이름부터 어렵지만 지역내총생산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진주라는 땅에서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느냐”를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KCB가 묻는 것은 “진주에 사는 당신, 얼마 버십니까?”에 가깝고, GRDP가 묻는 것은 “진주라는 동네, 돈 얼마 만들어냈어?”에 가깝다. 이는 질문이 다른 것이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진주의 GRDP에 관한 기사를 보면 진주의 지역내총생산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2021년 진주 1인당 GRDP는 2,525만원으로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경남 평균인 3,408만원에 비해 74% 수준이며,함안군의 6,325만원의 43%, 인접한 사천시의 4,529만원의 59.7%에 불과했다. 2024년에는 진주의 1인당 GRDP는 약 2,631만원으로 전국 평균 4,948만원에 한참 모자르는 수치이다. 알기 쉽게 표현하면 KCB는 사람 지갑 검사이고 GRDP는 도시 지갑 검사이다. 결론을 내자면 진주는 사람 지갑은 괜찮은데, 도시 지갑이 영 시원찮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주 경제의 역설이다. 진주시민 평균 소득 3,818만 원. 어찌됐던 진주에 대한 희망적인 자료로 보인다. 그런데 이 통계수치를 단순히 ‘진주가 잘산다’라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즉, 이 숫자를 자랑으로만 볼 게 아니라 숙제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민소득이 이 정도라면 이제 진주라는 도시의 생산력도 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재 진주에 필요한 것은 “진주시민 여러분, 우리 생각보다 잘삽니다!”라는 홍보가 아니라, “이제는 진주에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산업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정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진주의 청년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게 정말 중요하다. 진주시 평균소득이 3,818만 원이라고 하는데 20대~30대 청년에게 “당신의 연봉은 얼마입니까?”에 이어 “진주에서 그 연봉 계속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봐야 한다.만약 여기서 청년들의 답이 달라진다면 문제가 있다.현재 진주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소득이 높다는 것과 진주의 미래세대가 진주에서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미래는 현재 주민의 평균소득만 가지고 판단하는 게 아니다. 다음 세대가 얼마를 벌 수 있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경남도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평균소득과 함께 중위소득, 소득 불평등 등을 별도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의 분석을 보면 진주경제의 미래는 어둡다.중위소득은 사실상 정체했고, 소득불평등 지수는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진주 경제가 참 재미있다. 사람은 괜찮은데 도시는 영 신통치 않다. 시민 지갑은 괜찮은데 도시 지갑은 좀 더 두꺼워져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진주의 경제정책은 “우리 시민들 잘삽니다.” 에서 끝날 게 아니라 “우리 도시가 돈을 벌게 만들겠습니다.”로 가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우리 자녀들이 다른 도시로 돈 벌러 떠나지 않아도 되게 하겠습니다.”라는데 까지 가야 한다. 진주의 미래세대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도시는 이미 수명을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타령 하나. 어쩌면 진주는 사람은 적지 않은데 생산이 부족하고소비는 있는데 부가가치가 부족하고인재는 있는데 일자리가 부족한 ‘3부족 도시’는 아닐까?

  • 2026-08-28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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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민주당이 진주에서 패배하는 이유

민주당이 진주에서 패배하는 이유 민주당 당원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민주당 정치인으로서 진주에서 어떤 이미지를 만들면 좋겠느냐’는 물음에 ‘민주당이 진주에서 패배하는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대화는 2시간여 동안 계속되었다. 민주당은 진주에서 진주시장과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지난 20여년간의 선거를 분석해 보면 꾸준히 일정한 득표층을 확보했음에도 결정적인 벽을 넘지 못했다. 지난 2026년 전국동시지방선거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당 후보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진주가 가진 정치지형과 전략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정치공학적 접근방식이 가진 민주당의 한계가 여실히 반복되고 있지만 돌파하지 못했다. 진주의 정치 환경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접근성에서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진주는 오랜 전통의 보수정당 강세지역이다. 진주가 보수의 텃밭으로 자리매김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공무원과 퇴직공무원의 비중이 높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과 거리를 두는 경향이 높다. 도농복합도시인 진주의 특성상 농촌지역의 보수성이 강한 것도 민주당에게는 약점이다. 더 큰 문제는 진주의 정치가 ‘지역 유지 중심의 인맥정치’가 강하다는 점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기초의회에 발을 들여 놓기가 쉽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진주시의회가 지역유지의 놀이터라’는 비아냥이 제기될 정도였다. 지금은 민주당의 지방의회 진출은 많이 나아졌지만 존재감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정당 보다 사람’이라는 진주의 정치 성향이 민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되었다. 따라서 민주당은 시작부터 약 40점 이하에서 선거를 시작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진주에서 민주당 계속해서 패배하는 이유이다. 민주당이 실패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우선 ‘선거철에만 나타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다는 의미이다. 근데 선거 6개월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기자회견, 현수막, 공약발표를 시작한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렇게 생각한다.“평소에는 안 보이던 사람들이 또 나타났다.” 진주의 정치는 평소의 신뢰가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는 이유이다. 지나친 평가일지 모르지만, ‘민주당은 후보만 바뀌었을 뿐 정당은 성장하지 않았다.’는 지적돠 만만치 않다. 예를들면 후보가 낙선하면 조직도 함께 사라졌다. 그 결과 4년 마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비효율성이 반복되었다. 후보중심의 정치가 낳은 폐해이다. 진주가 직면한 수많은 현안에 대한 이슈 선점에도 무관심했다. 최근에는 LH기능 이전,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유치, 공공기관 2차이전 등 진주의 미래가 걸린 아젠다가 있지만 민주당은 조용하다. 이뿐만 아니다. 원도심 공동화, 신 경제성장 동력 부재, 청년 유출, 소상공인 문제, 일자리 부족, 도시 미래 전략 부재 등이 명확함에도 나서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이러한 이슈를 선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선거정국 이외에는 시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좀 더 사실적으로 말하면 국민의힘 의원보다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다. 물론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주에서는 여당이 국민의힘이고 야당이 민주당’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이는 지방의회에서 국민힘에 비해 민주당의 역할이 떨어진다는 지적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시민들은 대안을 원하지만 민주당은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비판과 감시의 기능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는지 모른다. 민주당은 ‘진주의 현안에 대한 대안은 이것이다’라는 인식을 주지 못했다. 사실 민주당 스스로 지역 의제를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은 애당초 대안이 있을 수 없었다는 점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보다 더 지역의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걷는 길을 만들지 못한 것이 최대의 패인이다. 민주당은 전국정치 이슈에만 집중한다. 진주에서 계엄심판, 정권심판, 정권교체 등 전국정치 이슈에만 집중한다. 상대적으로 지역 이슈는 등한시되었다. 진주의 서민들이 원하는 일자리, 교통, 문화 등의 지역 아젠다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는 진주의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을 설득하지 못한 결과로 작용되었다. 사실 지방의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지역 의제를 만들어 내고 집행부에 촉구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은 거의 보지 못했다. 민주당이 진주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민주당은 ‘전국정치’가 아닌 ‘진주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 진주시장 선거에 있어서 시민들은 ‘민주당 진주시장’이 아니라 ‘진주를 살린 시장’을 필요로 한다. 전국정치에서 벗어나 ‘생활정치’를 일상화해야 한다.진주가 안고 있는 현안에 대해 365일 다뤄야 한다. 선거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기자회견을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 이러한 상황이 되풀이 되는지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방의회 의원부터 강해야 한다.진주의 민주당 시의원의 역할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의원 개개인의 활동을 보면 5분 자유발언은 곧잘 하지만 시정질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까지 진주가 안고 있는 수많은 현안에 대해 민주당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에 반해 국민의힘 의원들은 시정질문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은 물론 진주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음을 시민들에게 알린다. 근데 민주당은 없다. 의원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는 대목이다.더 불편한 말을 한다면 ‘진주의 민주당 시의원들은 진주의 민주당이 아닌 의원 개인의 민주당에만 골몰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의제를 이끌어내고, 시민들과 토론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데 까지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개인적으로 제9대 진주시의회에서 민주당 시의원의 역할에 점수를 매긴다면 40점도 후할 정도이다. 진주는 어떤 정치인을 원하는 것일까?진주는 이념형 정치인이 아니라 생활형 정치인을 필요로 한다. 시민들이 원하는 후보는 진주를 잘 알고, 민원을 잘 해결하고, 싸움보다 성과를 내고, 전문가 이미지를 가진 정치인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당원을 제외하고 민주당과 진주시민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다. 민주당 당원이 아니면 터부시하는 경향이 심하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래가지고는 민주당이 진주에서 자리를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선거가 없는 4년동안 매주 해야 할 일이 있다. 지역현안 브리핑, 정책토론회, 청년간담회, 원도심간담회, 예산 분석, 시민제안 플랫폼 운영, 골목 민원 해결 등이다.이런 활동이 4년 동안 쌓인다면 민주당은 ‘선거때만 나타나는 정당’이 아니라 ‘진주시민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정당’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진주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지 않기 위한 핵심은 ‘진주시민과의 신뢰의 축적’이다. 민주당이 진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속에서 펼치는 정책과 활동으로 존재감을 쌓아 나가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이라서 찍는다’가 아니라 ‘진주를 위해 가장 잘 준비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때 비로소 진주의 정치지형을 바꿀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민주당이 진주에서 승리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적은 글이다.

  • 2026-08-21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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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제10대 진주시의회에 바란다

제10대 진주시의회에 바란다 제10대 진주시의회 전반기 원구성이 마무리됐다. 다수당인 국민의 힘이 의장과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상임위원장 배정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진주시민은 더불어 민주당에 압도적인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예상된 결과였다. 지역 언론에서는 전반기 원구성의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진주시의회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무엇을 바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진짜 원구성의 시작이다. 사실 지방의회 원구성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의장 선거, 상임위원장 배분, 정치적 셈법 등이다. 하지만 시민들에게는 누가 어떤 자리에 앉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내어준 자리에 앉아서 ‘시민을 위해 어떤 일을 할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의회의 존재 이유는 행정을 감시하고 예산을 꼼꼼히 살피며 시민의 목소리를 대신하는데 있다.지난 의회를 돌아보면 시민들이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도 분명 있었다. 그래서 시민사회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이 계속 제기되었다. ‘집행부에 대한 견제는 충분했는지, 수천억 원의 예산은 제대로 검증했는지, 시민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었는가?’ 일각에서는 비판만 하는 의회가 문제라는 지적을 하곤한다. 하지만 비판하지 못하는 의회는 더 큰 문제이다. 비판과 감시, 견제와 협력,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해내는 것이 지방의회의 본래 역할이라는 점을 늘 잊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진주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청년들은 도시를 떠나고 있고, 여전히 원도심을 활력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지역경제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고, 대형 개발사업은 시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끊임없이 검증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진주시의회는 집행부의 동반자이면서도, 시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의장은 의회를 하나로 이끄는 리더십을 보여야 하고, 상임위원장은 전문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공부하는 의원, 현장을 뛰는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진주시의회에 지지를 보낸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보여주기식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사진 한 장 찍기 보다는 정책 제안을 원한다. 얼굴 알리기를 위한 행사 참석보다는 치열한 토론을 바란다. 정당간의 정쟁보다는 시민의 삶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는 정치를 원한다. 이제 전반기 원구성은 끝났다.이제부터는 평가가 시작된다. 앞으로 2년 동안 시민들은 의원들의 말보다 행동을, 약속보다 결과를 기억할 것이다.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의회의 권위는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제10대 진주시의회가 '자리의 정치'를 넘어 '책임의 정치'를 보여주는 의회가 되길 기대한다.

  •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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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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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여성 의장 시대에 바란다

‘여성의장 시대’ 여성 의장 시대는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와 다선 여성 의원의 증가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꽤 오랫동안 지방의회는 여전히 남성이 독식하는 정치문화가 강했다. 그런 점에서 여성 의장의 증가는 지방의회가 과거와 달리 다양성과 대표성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전국 곳곳에서 여성 의장이 잇따라 선출되었다. 경남지역을 보면 진주시의회, 창원시의회, 하동군의회, 함양군의회, 거창군의회에서 여성 의장이 탄생했다. 여성 의장의 탄생은 지방의회의 변화로도 읽힌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 측면에서는 분명 환영해야 할 일이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지방의회의 의장이 여성으로 바뀌면 의회도 바뀔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아쉽지만 그렇지는 않다. 성별이 리더십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결국 성별을 떠나 공정성과 소통, 그리고 책임감이 리더십을 결정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지방의회 의장의 역할은 분명하다. 최우선 덕목은 집행부에 대한 감시이다. 더불어 지역사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의원 간 갈등을 조정하며, 시민의 목소리를 의회 운영에 담아내는 최고 책임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의장이 특정 정당의 대표처럼 행동하거나, 집행부와 친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의회의 독립성은 지속적으로 흔들려왔다. 매번 집행부의 거수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다. 시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집행부의 손을 들어 주는데 골몰했다. 물론 이면으로 개인의 이익을 도모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장이 시민들의 대표가 아니라 시장이나 군수의 협력자가 된다면 시민은 의회를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은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 있다. 더 큰 문제는 ‘여성 의장 시대’라는 상징성만 내세워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여성 의장 시대’ 그 이후에 대한 냉정한 평가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여성 의장 시대 이후에 예산 심사는 더 치밀해졌는가, 행정사무감사는 더 날카로워졌는가, 주민의 목소리는 더 많이 반영됐는가이다. 만약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여성 의장 증가는 정치적 기록일 뿐, 정치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여성 의장이 늘어난 지금이야말로 더 엄격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래서 ‘여성이라서 잘할 것’이라는 기대도, ‘여성이라서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은 사라져야 한다. 평가 기준은 오직 하나이다. 공정하게 의회를 운영했는가.강하게 집행부를 견제했는가.시민 편에 섰는가. 지방의회는 집행부 거수기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의장은 꽃자리가 아니라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는 자리이다. 지방의회가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의장의 성별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의회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다수당이 독식하는 원구성 이전에 토론문화가 자리 잡아야 하고, 계파 정치보다 정책 경쟁이 우선돼야 하며, 정당의 이해보다 시민의 이익이 앞서야 한다. 여성 의장 시대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이제 시민은 단순히 성별을 보지 않고 성과를 볼 것이다.직함을 보지 않고 품격을 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이렇게 물을 것이다.당신은 여성 의장이었습니까, 아니면 좋은 의장이었습니까?“ 그 질문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여성 의장 시대는 지방정치의 진정한 발전으로 기록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해두고 싶다.정치는 성별로 평가받지 않는다. 다만 의장의 이름앞에 붙어야 할 수식어는 ‘여성의장’이 아니라 ‘공정한 의장’ ‘당당한 의장’ ‘시민의 의장’이어야 한다. 여성 의장 시대가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변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 202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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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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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화투판 꼬라지

화투판 꼬라지 일제강점기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오락거리는 단연 ‘화투’였다. 밤이면 사랑방이나 주막에서 화투판이 벌어졌고, 농한기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화투를 즐기기도 했다. 근데 문제는 이 화투판이 심하면 가산탕진에 자식까지 내다 팔게 하는 또 다른 마약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판도 선거판도 도긴개긴이다. 화투가 불러온 이같은 망조(亡兆)는 국제통화기금시대를 지나, 경제가 겨우 허리를 펴고 있다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소위 ‘육백’ ‘삥오도시’ ‘섯다’ ‘짓고땡’ ‘아도사키’로 이어졌고, 급기야 한때는 ‘박정희 고스톱’ ‘전두환 고스톱’ 으로 부활해 막가기도 했다. 한때는 그랬다. 화투판 풍경을 보자. ‘현금 박치기’ ‘안면 몰수’ ‘촌수 불문’으로 불리는 화투판은 ‘어머님 죽어요’ ‘아버님 쌌어요’라는 막가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상가의 밤샘 고스톱은 그래도 양반 축에나 꼈지만, 해외 공항 로비에서 신문지를 깔고 서너 명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는 광경은 각종 언론을 도배하기도 했다. 화투판이 정치판과 다를 게 없다는 비아냥 속에서 이른바 ‘화투판의 불문율’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화투판의 불문율에 칠 것 없으면 ‘비풍초똥팔삼’을 버리라는 말이 있다. 점수도 잘 안 나고 광도 아니고 띠도 아닌 애매한 패들을 빗대어 부르는 표현이다. 근데 이러한 패를 요즘 선거판에 비춰보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하나씩 풀어보자. ‘비’는 비리와 각종 의혹에도 질끈 눈을 감아버리고 일단 ‘모르쇠’로 버티는 사람이다. 사실 결과는 뻔하지만 우선 살고 보자는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고(go) 스톱(stop) 구분이 잘 안되는 경우이다. ‘풍’은 살랑살랑 바람 부는 대로 이곳저곳 떠돌며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곳만 기웃거리는 사람이다. 겉으로는 ‘어른행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네 아이들조차 손가락질하는 줄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초’는 초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이름인데, 겨우 먹고 사는 민초들의 멱살을 잡고 대장 앞에 무릎을 꿇리는게 도와주는 일인 양 착각하니 불쌍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다. 정치를 종교로 생각하는 부류가 이들이다. ‘똥’은 말 그대로 구린내 나는 자들인데, 각종 특혜 의혹 제기에도 ‘깨끗한 놈 있으면 나와 봐라는 식’으로 제 식구 감싸기는 물론이고 주변의 손가락질에는 깔끔하게 고개 돌려 외면하시는 분들이다. ‘팔’은 겉만 보면 팔팔해 보이는데 속은 팍삭 늙은 분을 말하는데, 내거는 기치는 가히 개혁적으로 보이지만 마무리는 ‘상전 눈치보기’의 대가여서 저래도 되나 싶은 분이다. ‘삼’은 평생을 로터리에 서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손바닥에 침을 뱉어 갈 길 점치는 자이니, 높은 자리에서 배 불리 먹고도 성에 안 차는 사람이다. 앞장서서 내뱉는 해괴한 말주변은 우리를 아연실색케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풍초똥팔삼'은 버려야 한다는 화투판 선각자들의 얘기가 맞는 듯하다. 아끼다가는 ‘피박’ ‘멍박’ ‘설사’로 피칠갑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옛 어르신들은 화투판과 정치판에 빠진 사람을 보고 ‘모기가 피 빨아 먹듯 돈을 빨아 먹는다’고 했다. ‘화투판은 피를 빨아 먹는 게임’이라는 농담과 궤를 같이 한다. 오래된 잡지에 실린 ‘모기’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정치판이나 화투판에서도 상통하는 글이다.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 10g도 안되는 너와 더 이상 씨름하고 싶지 않다. 압사한 너의 시체에 경악하거나, 니가 사라진 장롱 위를 노려보며 버티는 것도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너, 돌아가라. 네 친구들인 파리와 바퀴벌레에게도 조심하라고 일러라. 나 오늘 홈키파 사왔다.’

  • 20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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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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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기득권 카르텔은 지방선거에서 손 떼라

정치는 결국 신뢰다. 유권자들은 완벽한 정치인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평소 자신의 언행과 과거 정치적 행보에 대해 최소한의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모습을 기대한다. 근데 최근 선거 양상을 보면 특정 정당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고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탈당하거나 무소속을 선택하는 정치인들의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제각각 내세우는 명분은 다양하지만 유권자들의 시선은 차갑다. 유권자를 정치적 명분의 도구로 이용하거나 볼모로 잡는 삼류정치의 전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당정치는 정치적 우산이 아니다. 일종의 정치적 약속이다. 공천 과정에서 촉발된 문제는 정당 내부에서 해결해야 마땅하다. 절대로 유권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된다. 정당의 그늘 속에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다가, 정당 내에서 처지가 불리해지면 ‘이제는 시민만 믿고 간다’는 말로 무소속 명분을 포장하는 주장들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 심각한 것은 대부분의 무소속 출마자들이 마치 ‘정의로운 결단’처럼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럴까. 유권자의 눈에는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보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선거 개입 의혹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부 행정 조직, 관변단체, 동창회, 퇴직 공무원의 선거 개입 의혹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물론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 일부 보이지 않는 손들은 오랜 기간 형성된 인맥과 영향력을 선거에 개입시켜 개인의 기득권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특정 후보의 권력 연장의 도구로 자처함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역사회에서는 이러한 보이지 않은 손을 ‘기득권 카르텔’이라고 부른다. 지방선거가 오랜 기간동안 지역 권력을 공유해온 기득권 카르텔간의 권력다툼의 장이 된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일부 행정 조직과 퇴직 공무원 등의 선거 개입은 단순한 개인적 정치 활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민들은 그것을 ‘개인 권력 쟁취의 연장선’으로 본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이른바 이들이 가진 권력과 영향력을 선거판에 동원해 기득권이나 이권을 챙기려는 의도가 저변에 깔려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출자·출연기관의 중요 직책 대부분을 퇴직 공무원이 독차지하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현 공무원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 권력에 줄 서는 문화가 반복되면서 ‘공직사회의 중립성’은 무너져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유권자들이 더 강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일부 관변단체를 비롯한 동창회 등의 조직적인 움직임이다. 선거철만 되면 대놓고 특정 후보 주변으로 몰려드는 모습은 시민들에게 심각한 허탈감을 안긴다. 시민을 위한 단체인지, 권력에 집착하는 단체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더 큰 문제는 지역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관변 네트워크가 선거를 좌우하려는 시도를 계속 이어간다면 지방자치를 해치는 ‘낡고 병든 정치문화’로 낙인 찍혀 시민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특정 관변단체들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은 ‘단체 기득권 챙기기’에 불과할 뿐이다. 특정 관변단체의 비호를 받는 후보가 있다면 시민들은 표로써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이제 ‘시민은 무엇을 심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차례이다. ‘시민과 정당과의 약속을 저버린 정치’, ‘관변단체와 동창회 등의 조직 동원 정치’, ‘일부 퇴직 공무원과 행정 권력의 그림자’, ‘시민 위에 군림하는 기득권 권력 문화’를 심판해야 한다. 이제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시민을 악용하려는 후보에게는 철퇴를 내려야 한다. 그리고 시민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후보를 잘 선택해야 진주의 선거문화가 건강해진다. 정치권력에 기생하는 기득권 카르텔은 당장 지방선거에서 손을 떼야 한다.

  • 2026-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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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향당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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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평론 기득권이 사람의 뇌를 바꾼다

기득권이 사람의 뇌를 바꾼다 거의 난장판을 방불케 하는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 유독 정치만이 정연하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개인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철 따라 때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며 기득권을 쫓는 집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오래된 환상 속에서 늘 헤맬 뿐이다. 짐작컨대 아직도 우리 진주는 기득권 패거리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에는 아직 멀다. 개혁(改革). 무릇 그 개혁을 외쳐 온 지가 언제부터인가. 그러나 그 개혁은 민망하게도 우리의 열망과 비례하지 않았다. 어쩌면 기득권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빌미만 제공했을 뿐이다. 그래서 사회 일각에서 외쳐대는 개혁은 여전히 실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권력에 빌붙은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길어지고 있다. 반면 권력의 눈 밖에 난 자들의 보호장치는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선거 때마다 새로운 귀속의 대상을 찾아 헤매는 정체성의 위기에 내몰린 지도 오래이다. 장밋빛 그림은 오직 권력자와 기득권의 몫일 뿐이라는 회의 섞인 우려가 사회 전반에 가득 채워지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 진주의 현주소라면 오버센스한 것일까? 이대로 간다면 극단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 누군들 극치의 어둠을 거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짧게 본다면 어둠의 현실은 더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긴 호흡으로 본다면 끝내 어둠의 현실에 고분고분하지 않을 진주시민다운 저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천년 진주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깨어난 인간이라야 어둠의 역사를 빛으로 구원한다’는 함석헌 옹의 말투를 빌리자면 그렇다. 선거를 앞두고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정치의 하늘을 여는 일이다. 정치의 하늘이란 무엇인가. 오염된 세력들의 ‘헤쳐 모여’가 아니라 진주의 새로운 대의를 여는 일이다. 그리고 이 땅의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그토록 앵무새처럼 되뇌어온 ‘민심 천심’의 그 하늘이다. 진주의 정치가 리더를 자처하는 자들의 독단과 기득권의 밀실거래만으로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선거를 앞두고 질문을 던진다. 왜 기득권과 권력자들은 하늘에 묻지 않고, 그들 스스로 하늘인 양 위장하고 있는가.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보석을 잘 살펴 가리고 골라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진주의 하늘을 뒤덮고 있는 ‘힘 있는 쪽의 유리’, ‘힘 없는 쪽의 불리’라는 오래되고 케케묵은 공식을 이 땅에서 지워낼 수 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이 땅의 질서를 되찾는 길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난장판을 다듬어 내고 정연한 저자 마당을 펴내고자 하는 진주시민들의 각성과 행동이다. 천년 진주를 지탱했던 도리(道理)가 땅에 떨어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염치가 사라지고, 과거 진주를 이끌었던 앞소리꾼의 기개와 절개 역시 아침이슬처럼 사라진 지 오래다. ‘권력과 이권’의 유혹 앞에 앞뒤 가리지 않고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인간성의 상실’은 참아도 ‘기득권의 상실’은 참을 수 없다는 식이다. 권력과 기득권을 움켜 쥔 사람들이 도덕적 우월감까지 누리면서 그걸 무기 삼아 시민에게 호통을 치고 있으니, 이 어찌 놀라운 진주의 현실이 아닌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을 맞아 남명 조식의 단성소(丹城疎)와 서리망국론(胥吏亡國論)을 꺼내 읽어 본다. 단성소는 권력 앞에서 당당히 진실을 말한 양심선언이며, 서리망국론은 서리들의 무능으로 인해 국가와 조직이 무너지는 구조를 꿰뚫어 본 정치철학이다. 남명이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던진 이 두 가지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는 남명의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어야 한다. 그래야 천년 진주임이 증명된다고 굳게 믿는다. ‘기득권이 사람의 뇌를 바꾼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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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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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규의 시사정미소) 3. 원도심 공동화의 주범이 진주시민이라고? 썸네일 이미지

주간평론 (황경규의 시사정미소) 3. 원도심 공동화의 주범이 진주시민이라고?

원도심 공동화의 주범이 진주시민이라고? 진주시장 선거의 핫 이슈로 떠오른 원도심활성화와 관련한 글을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아마 열렬한 현 진주시장의 지지자인 걸로 이해된다. 대략 글의 요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원도심 공동화의 근본 원인은 온라인을 주로 이용하는 글쓴이를 비롯한 진주시민’이며 ‘전국적인 상황임에도 진주시정만 탓하는 것은 너무 쉽고 단순한 비판이다’는 주장에 이어 서울 상가도 텅텅 비고, 핫플 성수동도 흔들리는 전국적인 상황에서 유독 진주시정만 실패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는 주장’이라는게 글의 골자이다.진심으로 그런 의도로 쓴 글이 아니길 빈다. 만약 이 주장이 맞다면 설왕설래할 필요도 없이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원도심 공동화의 주범은 진주시민’이며 ‘원도심 공동화에 진주시의 책임은 없다’이다. 하기사 진주시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지난 8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진주시민들이 전혀 도와주지 않아서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 아닌가? 섭천 쇠가 웃을 주장이지만 진주시장 지지자의 글이니 현 진주시장의 의사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컨펌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명한 진주시민들이 보기에 진주시장에게 도움이 되는 글은 아니지 싶다. 실제 온라인 소비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전국 어디를 가나 원도심 상가의 공실이 증가하는 것도 맞다. 문제는 ‘사실의 일부를 전제하면서 책임의 전부를 피해가려는 혹세무민의 태도’에 있다. ‘진주시 행정의 실패’를 ‘사회구조의 변화’로 가리고, ‘진주시 정책의 부재’를 ‘시대의 흐름’으로 변명하는 것도 모자라 책임의 화살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며 사는 ‘시민의 생활 방식’에 돌리고 있다. 아무리 진주시장을 비호(庇護)하고 싶어도 진주시민을 욕하면서 하는 건 아니다 싶다. 정작 글을 쓴 자신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거리의 빈 점포만 보고 행정의 실패라고 말하는 것은 공정한 비판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진주시정은 지난 8년 동안 도시의 소비구조가 바뀌고, 상권의 형태가 바뀌는 것을 충분히 보고 예측할 수 있는 시간 속에 있었다. 온라인 쇼핑의 성장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전 세계가 예측했던 변화였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그 변화에 대비해 진주시는 무엇을 준비했는가?’ ‘행사나 이벤트 몇 번 더 열고, 시설 몇 개 짓는 것으로 진주 경제의 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믿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정책이 아니라 명백한 ‘무능한 실정(失政)’에 불과할 뿐이다. 근데 ‘진주시민의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논조의 주장은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진주시가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원도심 도시재생 거점으로 청년 허브하우스를 짓고, 중앙지하도상가 공실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창업 준비공간으로 바꾸는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인정한다. 만약 8년동안 손놓고 있었다면 진주시민들의 채찍에 혼이 났을 것이다. 근데 주장을 하려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근거를 들이밀어야 한다. 묻고 싶다. 청년 허브하우스 하나 짓는다고 원도심 활성화가 이루어진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가? 사실상 재기불능의 상태인 지하도상가 활성화가 청년창업 준비공간 등의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서 바닥을 치고 올라설 수 있다고 믿는가? 이것은 진주시가 지난 몇 년동안 추진해 왔지만 실패한 정책으로 이미 낙인찍힌 상태다. 제발 지역 언론에서 무수히 쏟아 낸 보도 내용을 한번 쯤은 살펴보고 글을 쓰는 것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기본 예의’이다. 그것도 모르고 진주시의 목소리만 앵무새처럼 따라 한다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진주시를 도와주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오히려 진주시를 욕 먹이는 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악수(惡手)라는 뜻이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대안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다시 사람을 거리로 나오게 할 것인가’ ‘어떻게 지역 상권만의 매력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머물고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진주시가 이 사실을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제대로 된 정책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남 탓은 초등학생도 잘한다’면서 진주시민의 지적을 초등학생 수준 이하로 매도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어서 ‘원도심 활성화 해법은 어렵다’고 강변한다. 어쩌라는 것인가? ‘원도심 공동화의 책임은 진주시이다’라는 주장은 초등학생같은 진주시민의 지적질이며, ‘해법이 어려우니 진주시의 전적인 책임은 아니다’라는 것인가? 백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남 탓은 초등학생도 잘한다’라는 말은 두루두루 적용되는 말이긴 하지만 ‘진주시민’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진주시 행정’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시민의 소비행태를 탓하는 행정’ ‘시대의 변화를 탓하는 행정’ ‘경제상황을 탓하는 행정’이었기 때문에 원도심 활성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은 어째서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원도심 공동화의 근본적인 책임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진주시의 책임이 아니라면 진주시민의 책임이라는 뜻인가? 그런 것인가? 누구의 책임인지 명백히 밝히지 않고 대충대충 설렁설렁 책임소재를 흐리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말이든 글이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원도심 공동화 문제는 시민의 잘못도, 시대의 탓도 아니다. 오히려 도시전략의 문제이다. 그리고 전략은 행정의 책임이다. 도시는 시민이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이 설계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진주시 행정이 잘못된 설계와 정책으로 원도심 공동화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진주시민의 지적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진주시민은 묻고 싶어진다. 도대체 진주시는 지난 8년 동안 뭐했노? 더 큰 문제는 거의 같은 내용의 글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SNS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이다.선거법은 개인의 선거운동은 제한하지 않는다. 근데 페이스북에는 두 사람의 명의로 올라와 있는 글이 거의 같다. 시작하는 부분만 다를 뿐이다. 글을 올린 시간도 1분 차이밖에 되지 않는다.선거법과는 관련없을지 모르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애쓴다'라는 서글픈 생각이 든다.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눈가리고 아웅'하는 진주시 행정을 그대로 닮았다. 이런 행위가 진정으로 진주시장을 도우는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다음의 사진을 보고 제 개인의 의견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얼핏보면 이 두 글은 겉으로는 균형잡힌 문제제기처럼 보이지만 '책임의 방향을 흐린다'는 비판을 맏아 마땅하다.문제의 본질보다는 문제 제기 자체를 문제로 만드는 전형적인 프레임이다. 상가 공실은 단순한 시장의 상황으로 설명해서는 안된다.도시정책, 상권활성화계획, 인구정책, 교통정책, 도시개발 전략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이다.그런데 이 글은 그 성적표를 진주시민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돌리고 있다.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원도심 공동화의 책임을 '모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2. 공실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책의 결과이다. 공실은 시장의 변덕이 아니라 행정의 선택이 누적된 결과다. 따라서 '시정만 탓해선 안된다'라는 말은 '결정은 우리가 했지만 결과는 나눠 갖자'라는 식이다.이는 책임의 민주화가 아니라, 책임의 희석에 불과하다.3. '경기' '소비패턴' '시민 불이용' 등의 문제는 사실일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이 동시에 등장한다면, 그것은 '행정의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한 구도'라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4. 상가 공실이 늘어나면 시민의 삶이 무너진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결정 주체가 아닌 결과를 감당하는 주체이다. 따라서 시민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 전에 '이 결정을 누가 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충분히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다만 선거를 눈 앞에 두고 이와 같은 교묘한 글들이 원도심 공동화로 상처받은 서민들의 삶에 다시 한 번 더 생채기를 내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것이다.리드문을 제외하고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글과 '다시 뛰는 원도심, 다시 살아나는 상권'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사진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든다. '8년 전부터 꾸준히 노력했으면 원도심공동화라는 시민들의 지적은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국민의힘 진주시장에 출마한 김권수예비후보가 지난 2월 26일 원도심 활성화 정책의 하나로 ‘원도심에 진주시청 제2청사를 추진하겠다’ ‘진주시 출자출연기관들을 원도심으로 이전하겠다’는 요지의 기자회견을 했다. 근데 지난 3월 16일 조규일 진주시장이 원도심활성화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내용을 보니 ‘시청내 3개 부서를 원도심으로 이전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직접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현장 점검을 하는 사진도 떡하니 신문에 실렸다. 물론 김권수 예비후보의 공약을 전부 배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지난 8년 동안 손 놓고 모른척 하고 있다가 부랴부랴 내놓은 원도심활성화 정책이 ‘김권수 예비후보의 정책을 일부 배끼는 수준’이었다. 조규일 진주시장의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8년 동안 원도심 활성화에 대안이 없었음을 이번에 스스로 증명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페이스북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를 짓고 있다. ‘남 탓은 초등학생도 잘 합니다. 하지만 해법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비난보다 더 필요한 것은 현실을 인정하고 방향을 잡고 꾸준히 풀어가는 노력입니다. 상가 공실 문제를 정말 해결하고 싶다면 이제는 공격보다 대안을 말해야 합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라 상권을 다시 살리기 위한 긴 호흡의 해법입니다.’ 그 긴 호흡이 ‘시청 일부 부서 이전’을 두고 한 말은 진심으로 아니길 빈다. 진주시장 선거를 앞두고 누구든지 개인의 의사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근데 이 글이 조규일 진주시장을 돕는 글인지는 알기 어렵다. 지금 진주에 필요한 것은 진주시민을 훈계하는 행정이 아니라 정책의 실패를 먼저 인정하는 행정이다.그리고 그것이 진주시정 8년을 평가하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한 개인의 글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원도심 공동화의 주범이 글쓴이를 포함한 진주시민이라는 전제를 보고 진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화가 나서 몇자 적었을 뿐이다. 진정으로 원도심 활성화를 염원한다면 지난 8년의 과오를 재차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현 진주시정이든, 차기 진주시정이든 관계없다. 시정의 목표는 진주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다. 특정인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진주시민에게 과오를 뒤짚어 씌우는 것은 상식 이하의 행동이다. 더불어 이 비상식적인 글들이 SNS를 떠돌아 다니는 상황이, 현 진주시장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말해주고 싶었다. 진주시민들은 이렇게 묻고 있다. 그래서 지난 8년 동안 뭐했길래, 원도심이 아직도 이 모양 이 꼴이고?그래서 진주시장은 책임이 없단 말이가?그래서 진주시민이 잘못했다는 말이네? 그래서 SNS에 실린 이 글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주시장을 잘 뽑아야 한다.

  • 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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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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