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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公人) 사용 설명서 2(feat. 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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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 작성일

    2025.08.18 P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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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행정학자 랠프 험멜은 관료에 대한 5가지 오해를 적시했습니다. 관료는 사람이 아닌 사례를 다루고, 통제와 능률에만 관심을 가지며, 머리와 영혼이 없는 새로운 퍼스낼리티이며, 어떻게 꾸미고 알릴것인가에 관심을 가지며, 사회를 지배하는 통제기구라고 했습니다. 공인(公人)은 ‘지방 소멸을 걱정’하지만, 관료(官僚)는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통제기구가 되기를 꿈꾼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공인 사용 설명서’보다도 ‘관료 퇴치 설명서’가 더 시급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공인(公人)과 관료(官僚). 누구를 선택할지는 시민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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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公人) 사용 설명서 2(feat. 관료)

 

공인(公人)이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시민들에게 직접 공개했다. 더 나아가 아예 휴대전화를 소통창구로 활용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뜻이다. 

휴대전화에 제기되는 수많은 민원들도 직접 답장을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앞다퉈 벤치마킹을 하지만 진정성의 차이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이른바 ‘진심과 흉내의 차이’이다.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이 그 주인공이다.

 

정원오 구청장의 지표와 평판을 보자. 행복지수는 서울 자치구 중 상승률 1위, 포용지수는 25위에서 1위로 도약했다. 

지역내 총생산(GRDP) 성장률도 서울 25개 자치구 중 2021년 기준 10.9%로 1위를 차지했다. 인물에 대해서도 진정성있는 ‘사람 중심 정치’라는 평가와 함께 높은 평점을 매겼다. 전국적인 화제를 모은 것은 당연했다. 

요즘 세상에 판을 치고 있는 관료(官僚)가 아니라, 쉽게 볼 수 없는 제대로 된 공인(公人)이었기에 언론에서도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공인(公人)에 비해 관료(官僚)라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로 곧잘 쓰인다. 관료의 사전적 의미와 용례를 살펴보자. 

‘관료는 행정을 집행하는 임명직이다. 권력을 배경으로 국민의 의사와 사정을 무시하고 독선적·획일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는데 급급해하는 특성을 갖는다. 이를 비난하는 경우에 관료라는 말을 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전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니, 굳이 나서서 오지랖을 떨 필요까지는 없다.

 

미국 행정학자 랠프 험멜은 「관료제 경험(1977)」이라는 글에서 ‘관료에 대한 5가지 오해’를 적시했다. 50여 년 전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순간, 저절로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하게 된다. 관료에 대한 5가지 오해를 살펴보자. 

사회적 관점에서 관료는 ‘사람을 다룬다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관료는 사람이 아닌 사례(事例)를 다룬다.’ 

문화적 관점에서 관료는 ‘정의·자유·폭력·억압·병폐 등에 관심을 갖고 걱정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관료는 통제와 능률에만 관심을 가진다.’ 

심리적 관점에서 관료는 ‘우리들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머리와 영혼이 없는 새로운 퍼스낼리티이다.’ 

언어적 관점에서 관료는 ‘그들만의 언어를 쓰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의견을 나누기보다는 어떻게 꾸미고 알리는가에만 관심을 갖는다.’ 

정치적 관점에서 관료는 ‘공공 관료제가 사회에 대한 봉사기구가 아니라 사회를 지배하는 통제기구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공인 사용 설명서’ 보다 ‘관료 퇴치 설명서’가 더 필요한 사회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공인(公人)의 탈을 쓴 관료(官僚)가 지금도 활개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도 관료사회에 남아 있는 ‘권위주의에 기반한 조폭 문화’를 목격하면 관료의 부정적 이미지가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자신이 직접 목격했던 의전 행위에 대해 ‘관료사회의 권위주의적 조폭문화’라고 회고했다. 

지금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각종 의전(儀典)이 횡행하고 있다. 흡사 조폭과 흡사해 보이는 이같은 ‘권위에 대한 복종문화’는 여전히 행정과 평범한 일반 시민과의 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사실 의전은 관료만이 누릴 수 있는 달콤한 권력이자, 알면서도 모른 척 향유하는 관료의 속내이기도 하다. 물론 의전은 조폭문화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공인(公人)은 ‘지방 소멸을 걱정’하지만, 관료(官僚)는 ‘지역사회를 지배하는 통제기구가 되기를 꿈꾼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공인 사용 설명서’보다도 ‘관료 퇴치 설명서’가 더 시급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공인(公人)과 관료(官僚). 누구를 선택할지는 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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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목마와 진주시장 선거

트로이의 목마와 진주시장 선거 트로이의 목마는 단순한 전쟁 이야기의 교훈을 넘어 오늘날 정치·행정·조직 운영 전반에 걸쳐서 실제로 적용되는 구조적 경고로 회자된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는 선의로 위장된 권력 집착, 안정을 가장한 권력 유지, 협력의 가면을 쓴 지배 의지, 시민의 방심과 착각을 영양분으로 삼는 권력 쟁취 따위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은유이기도 하다. 트로이의 목마는 겉으로 보기에는 신의 선물이자, 평화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자신들의 손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 ‘판단의 실패’를 대표하는 산물로 기억되고 있다. 트로이의 비극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트로이는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트로이의 목마를 자발적으로 성 안에 들인 판단 오류에 기인한다는 점이다. 진주시장 선거는 트로이의 목마를 성 안에 들이는 중요한 판단과 결정의 과정이다. 전쟁에 지친 트로이 시민들이 목마를 끌어들인 심리의 재현이 되어서는 안된다. 위험해 보이지 않는 선택, 무난해 보이는 선택, 안전해 보이는 선택이 오히려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트로이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사실 관료형, 관리형, 안전형 리더십이 가지는 가장 큰 위험은 ‘실패’가 아니라 ‘정체’에 있다. 이러한 리더십은 가는 길은 있지만 제대로 된 방향이 없고, 갈등은 없지만 토론도 없으며, 변화도 없지만 책임도 없다. 행정의 모든 과정은 적법한 범위 내에 있지만 인구 감소, 청년 유출, 원도심 붕괴, 재정 부담을 낳는다. 이른바 트로이의 패착을 답습하게 되는 것이다. 진주시장과 트로이의 목마와 공통점은 도시의 성패를 손에 쥔 존재라는 점이다. 만약 ‘행정 경험이 풍부하다’ ‘안정적으로 시를 운영한다’ ‘중앙과 소통이 잘 된다’는 일반적 평가를 받는 인물이 도시의 장기 비전도 없이 중앙 논리와 개발 논리를 들여오는 통로가 된다면 이는 성을 지키는 장수가 아니라 트로이의 목마가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트로이 시민들이 목마를 선물로 믿었듯이 유권자 역시 이러한 리더십을 안전한 선택으로 오인한다는 점이다. 지금 진주는 안전한 관리가 아니라 비전과 방향이 필요하고, 도시 발전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단언컨대, ‘전략과 비전 없는 안정은 쇠퇴의 다른 이름이다’라는 사실을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주의 현주소를 돌아보자. 진주의 미래를 일구어낼 성장 동력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인구는 감소 국면에 들어섰고, 산업 구조는 특정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원도심은 쇠퇴하는 반면 신도시는 확장되고 있지만 자족 기능은 약하다. 대형 개발사업은 많았지만 성과가 시민의 삶의 질 개선으로 체감되지 않는다. 다가오는 진주시장 선거는 단순한 인물 교체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의 범주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체를 관리할 것인가’ 아니면 ‘전환을 선택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선 중요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관리형 리더십 보다는 변화형 리더십을 선택해야 한다. 진주의 도시 전략을 단위로 설계할 수 있는 지역비전 자립형 리더십도 시급하다. 더불어 도시의 운명을 설계하고 책임질 전략가형 리더쉽도 반드시 나와야 한다. 트로이를 무너뜨린 것은 ‘이제 위협은 끝났다’는 자기 안심이었다. 진주를 정체와 쇠퇴로 몰아 넣은 것도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 ‘안정이 최선이다’라는 자기 합리화이다. 이에 안주하는 순간 진주를 이끄는 시장은 도시를 지키는 성주가 아니라 적에게 성문을 여는 목마가 된다. 이와 함께 ‘진주는 안전하게 늙어가고 기회는 조용히 사라진다.’ 트로이의 교훈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진주의 몰락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 2025-08-18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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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 썸네일 이미지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 지방자치제도의 성숙도와 가늠자 역할을 하는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이 있다. 선거 과정에서 공개된 후보자 정보에서 적지 않은 출마자들이 각종 범죄경력이 있음에도 특별한 제약 없이 선거에 나선 것은 물론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는 사실이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전체 당선자의 약 33%인 1,341명이 각종 범죄전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유형도 선거법 위반부터 폭력·사기 등 기타 형사 범죄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기록이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범죄 경력 출마자들은 형사 범죄, 선거형 범죄, 권력형 범죄, 공직 신뢰를 훼손한 중대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사법적 책임을 졌고, 사면·복권되었으니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보호장치로 삼는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판단은 유권자의 몫이다.’라는 말로 책임을 유권자에게 떠넘긴다. ‘선거로 원하는 결과만 얻으면 된다.’는 식에 다름 아니다. 범죄 사실에 대한 사법적인 책임 종료가 곧바로 공적인 신뢰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아가 사면·복권 역시 엄밀하게 말하면 국가가 형벌을 면제한 행위일 뿐이지, 유권자에게 신뢰를 회복해야 할 의무까지 면제된 것은 아니다. ‘법적 책임 이후에도 정치적·윤리적 책임은 남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이다. 범죄 경력자의 공직선거 출마에 대해서는 법적 검증 시스템이 가진 한계에 대한 현실적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직사회 전체에 대한 시민 신뢰 하락과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 등 부정적 정치문화의 싹을 키운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법적으로 가능한 일’지만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서 반드시 냉철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자 공직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절차이기에 그렇다. 현행 법제도는 특정한 범죄에 대해서만 출마를 제한하고, 그 이외의 경우에는 유권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법치주의적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구조이다. 하지만 법적인 허용이 곧 정치적 정당성과 공직 적합성과 연결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범죄 행위’라는 존재가 아니라 ‘범죄의 성격’이라는 것이다. 선거형 범죄·권력형 범죄를 사기와 폭력 같은 단순 범죄와 같은 기준에 둘 수 없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망각 위에 세워지지 않는다. 법적인 자격을 뛰어넘어 ‘정치적 책임에 대한 명백한 태도’와 ‘사회적 신뢰 회복에 대한 설명과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침묵’과 ‘기억상실’을 기대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범죄 경력자의 각종 선거 출마와 관련한 논란은 특정 개인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공직사회의 기준과 수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이자, 민주주의의 회복과 지방자치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기준을 낮게 잡는다면 지방자치는 물론 민주주의의 신뢰마저 침식되고 말 것이다. 다가오는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윤리적 기준과 책임정치의 문턱을 높여야 한다. 단순히 범죄 경력자의 정치 참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책임을 유권자에게 전가하기 보다는 출마자 스스로 신뢰 회복을 위한 설명과 검증을 감수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권자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이기 때문이다. 강조컨대, 유권자를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는 비민주적인 현직 출마예정자에게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전선이다. 그 출발점인 공직 선거에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지방자치의 미래는 낙관하기 어렵다. 역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남긴 불편한 기록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 2025-08-18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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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늪에 빠진 진주

평균의 늪에 빠진 진주 진주가 ‘평균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결코 복제 가능한 도시가 아님에도 ‘획일화’ 혹은 ‘평균화’의 수렁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진주의 강점을 스스로 희석시키고, 자발적 평준화에 동참하면서 대한민국 여러 도시 가운데 ‘One of them(그저 그런 도시 중의 하나)’로 퇴색되고 있는 것이다. 진주가 가진 도시 고유의 가치가 발현되었던 ‘Only one(오직 이곳)’이었던 진주의 위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의 평균화와 획일화가 진행되면 도시의 역사성과 정체성은 흐려진다. 타 도시에서 ‘검증된 모델’과 ‘성공사례’가 무차별 도입되면 도시는 개성을 잃게 된다. 궁극에는 시민들도 ‘나도 그냥 그 중의 하나’라는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지역사회 일각에서 ‘지금 진주는 어떤 도시로 기억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유이다. 도시의 경쟁력은 독창성과 차별화에서 나온다. 근데 진주는 ‘차별화가 아닌 평준화’, ‘변화가 아닌 안전한 모방’을 선호한다. 타 지자체의 우수사례와 선도도시 모델 등에 주목한다. 다른 도시에서 효과를 거둔 사업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라는 안전한 선택논리가 작동한다. 더불어 이러한 시도의 이면에 진주의 차별성과 창의성을 갉아먹을 수도 있다는 비판적 인식은 배제된다. 이미 정해져 있는 쉬운 길을 쫓아가는 ‘One of them 도시’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타 지역에서 소비된 모델을 뒤늦게 가져다 추진하는 사업도 적지 않다. 전국에 복제되다시피한 ‘청년몰 모델과 재래시장활성화사업’, 핫플레이스 흉내 프로젝트처럼 변해버린 ‘특화 공간 조성’, 예산 투입과 사업실적이 목표가 된 ‘공공 건축’ 등의 사례처럼 하나같이 공간의 상품화에만 올인하고 있다. 통합전략 없이 개별 사업이 서로 고립된 채 진행되면서 결국 행사성 사업의 반복으로 귀결된다. 도시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는 소홀한 ‘명분한 화려한 공공사업’만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진주가 ‘Only one 도시’에서 ‘One of them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되었다. 행정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선택의 반복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검증된 모델만 선택한다. 외부 설계와 공모전 당선작을 지역의 맥락과 검토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한다. 창의적 실험과 접근은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회피한다. 시민 의견의 수렴과정은 형식적이며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런 행정 정책의 반복 속에서 결과물은 비슷해지고 도시의 색깔은 날로 희미해진다. 과정속에서 진주만의 독창성이 상실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진주의 정책 설계의 중심에 도시의 고유성·시민성·역사성이 부여되어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시민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 사업이 진주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가?’ ‘이 거리는 진주 시민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는가?’ ‘이 공간은 진주의 역사와 정체성을 잇고 있는가?’ ‘이 정책의 주인이 시민인가, 행정인가?’ 만약 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정책이라면 지금이라도 과감히 중단되어야 한다. 진주가 ‘그저 그런 도시’의 반열에 머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회성 오류의 반복이 아니라 구조화된 행정 관행에 있다는 지역사회의 지적은 뼈아프다. ‘뭐라도 하나 더 만드는 도시’가 아니라 ‘하나라도 제대로 만드는 도시’로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 과거 진주는 역사·문화·예술·경제 등 많은 분야에 있어서 적어도 ‘Only one’이라는 자부심을 가진 도시였다. 지금도 과연 그런가? 진주가 평균의 늪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지금의 진주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그것이 ‘Only one’ 도시 진주를 다시 만드는 첫걸음이다.

  • 2025-08-18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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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권하는 사회

거짓을 권하는 사회 ‘거짓을 권하는 사회’는 거짓을 토해내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고, 진실을 말하면 오히려 손해가 되는 사회구조를 말한다. 더 나아가 거짓이 생존전략이 되고, 거짓이 유리한 방향으로 작동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개념이다. 더 큰 문제는 거짓임을 알고도 다양한 이해관계에 의해 침묵과 외면 혹은 터부시가 당연시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거짓을 권하는 사회의 진짜 얼굴’이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을 ‘끼리끼리 뜯어먹기 판’의 공범으로 내몬다. ‘이익 공동체’의 안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거짓’이 곧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잘못된 사고를 주입한다. 지역사회에 부조리가 횡행해도 구성원의 이익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판단하에 침묵하거나 진실의 편에 서기를 꺼리게 만든다. 종국에는 스스로 ‘거짓말’의 문을 열게 만든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의 커다란 폐해이다. 전문가들은 민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거짓을 권하는 사회’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민의 신뢰 위에서 작동해야 하는 행정의 과도한 권력 남용이 개인·사회·단체에 ‘거부하기 어려운 거짓말’을 요구하고 있다는 강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적시하지 않아도 행정 압력의 사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굳이 행정과 싸워 봐야 좋을 것 없다.’는 의식의 팽배가 그 뚜렷한 증거이다. 민선시대 행정의 언로(言路) 장악 역시 ‘거짓이 만연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행정에 대한 비판 역시 ‘행정 조직에 대한 정면 도전 혹은 정치적 불이익’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언로를 막는 최상의 무기인 각종 보조금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려 시도한다. 물론 그러한 행위는 비공개적으로 행해진다. 암묵적이며, 때로는 회유도 동반한다. 더 큰 문제는 아무런 죄의식없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원을 받으면 비판해서는 안된다.’는 식이다. 과연 그런가? 행정에 대한 비판은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 공공성과 책임성, 시민참여 등과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담론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왜곡하고 변질시키려고 시도한다. 예산과 인맥을 통해 비판의 주체를 압박하는 것은 물론 주변인들의 이해관계를 역이용해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 결국 보조금을 지원받는 단체는 울며 겨자먹기로 행정의 압력을 수용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내부 분열 혹은 부분 와해로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행정에 대한 비판은 점차 금기시된다. 이것이 이른바 민선시대 행정 권력의 민낯이다. 지역사회가 거짓을 권하는 사회로 이행되는 원인은 ‘행정 권력은 끊임없이 비판과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비판적 사고의 멸실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지역사회는 부당한 행정 권력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과 견제를 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야 한다. ‘행정 권력을 비판하는 일련의 행위는 무차별 보복을 받는다.’는 피해망상적인 사고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단언컨대, ‘행정은 성역이 아니다.’ 물론 행정 내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거짓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거짓이 유리하게 작동되는 잘못된 행정 시스템의 결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렇다고 ‘거짓을 권하는 행정 시스템’을 행정 스스로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진실을 위험하게 여기는 행정’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더불어 지역사회를 ‘거짓말을 권하는 공간’으로 더욱 퇴보시켜 나갈 것이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가 지속되면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로 변질되고 ‘권력과 이익이 진실을 억압하는 사회’로 퇴보된다. 예방책은 간단하다. ‘거짓을 말해야 살아남는 행정’이 아니라 ‘진실을 말해도 안전한 행정’을 만드는 것이다. 거짓을 권하는 사회에서 행복한 시민은 존재할 수 없다.

  • 2025-08-18
  • 작성자

    황경규/진주향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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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일 진주시장 좌하

조규일 진주시장 좌하 ‘관치 식민지 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인의 자치가 철저히 배제되고 일본인 총독과 관료들이 모든 권력을 장악한 식민지 관치 체제’를 말합니다. 이 시기의 행정은 일본식 중앙집권적 관료제가 그대로 계승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자치제도는 허울뿐이었으며, 경제는 관치금융과 관치경제로 대표되며, 사회 통제를 위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했습니다. 해방정국과 군사정권을 거쳐 민주주의가 정착된 작금에, ‘관료가 시장과 사회를 직접 통제·관리하는 관치적 사고방식’은 여전히 지역사회에서 무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의도적인 민간단체 사업추진 방해 공작과 선별적 지원 혹은 배제 등의 사례들은 너무나 참혹한 지역사회의 민낯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역사회 일각에서 ‘관치 식민지 시대의 부활’이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은 민주주의 사회에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알 권리’는 투명한 행정, 언론 자유, 시민 참여까지 포괄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장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근데 지금 지역사회는 진주시의 행정 행위들이 헌법이 정한 표현의 자유와 국민주권 원리에 근거한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하고 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민간단체에 대한 진주시 행정의 과도한 간섭이 대표적입니다. 거의 ‘일제강점기 관치 식민지 시대’와 버금간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민간 주체의 자율적 활동에 대한 행정의 지나친 개입과 통제는 각종 폐해를 낳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에는 민간단체의 사업을 아예 추진하지 못하도록 행정이 압력을 행사하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 행위’로 군부독재 시절에서나 벌어졌던 일입니다. 단언컨대, 진주시 행정이 ‘현재 관치 식민지 시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진주시에는 501호와 801호가 있다.’라는 비아냥이 세간에 횡행하고 있습니다. 행정이 전방위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비단 문화예술 분야에만 그치지 않고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행정이 재정지원과 감사 권한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민간단체는 지원 종속과 간섭 부담 속에 심각하게 자율성이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행정을 따르라. 통제·불균형·관치로의 회귀’를 표방하는 듯한 진주시의 행정을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행정이 시민을 앞질러 선두에 서게 되면 과거 권부(權府)의 공포를 재현하게 됩니다. 행정이 무심코 표현하는 무언의 압력은 개인의 양심을 ‘획일성의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종국에는 행정의 보복조치가 두려워 ‘자포자기의 감옥’에 갇히게 되면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는 두 날개를 잃고 끝없이 추락하게 될 것입니다. 행정이 시민사회의 합의에 기초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설정한 ‘지역 발전론’을 정당화하는 일도 삼가해야 합니다. 먼저 시민사회의 합의를 도출해 내야 합니다. 설사 비판적 시각이 제기되더라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지역사회는 ‘진주시 행정에 대한 모든 저항적 행위는 결국 무차별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는 뼈아픈 교훈을 역사에 새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부를 전체로 확대 해석하는 부분은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역사회에는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행정행위가 전방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부디 ‘진주시의 행정이 관치 식민지 시대와 다를 바 없다’는 시민사회 일각의 우려를 씻어낼 수 있는 행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적습니다.

  • 2025-08-18
  • 작성자

    황경규/진주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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